서지마을 미사 순교자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함께 기억하며 미래를 열어가겠습니다.

서지마을 순교자들

복자 최해성 요한, 복녀 최 비르지타에 대한 기록

복자 최해성 요한

원주 고을을 다 주신다 해도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 최양업 신부님의 열 두번째 편지, 1856년 9월 13일

그 순교자 이름은 최해성 崔海成 요한입니다. 그는 극도의 비참한 가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항구한 인내심을 발휘하였습니다. 마을에 선교사 신부님이
오셔서 성사의 은총을 받을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열심에 불탔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박해로 인해 포졸들에게 잡혀가) 끌려나와
문초를 받았습니다. 관장이 “네가 천주를 배반하면 나라의 착한 백성이 되겠고, 너의 모든 재산을 되돌려줄 것이며 상금까지도 보태줄 것이다”라고
구슬렸습니다. 요한은 “저는 관장께서 온 고을을 다 주신다고 하셔도 하느님을 결단코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너의 종교를 위해 죽겠다는 말이 참말이라면 네가 죽을 때까지 치도록 하마.” 요한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고 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뼈가 드러났으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붙은 그의 영혼은 기쁨으로 용약하였습니다. 그는 지겹게도 스물한 차례나 문초를 당하였습니다.
얼마나 모질게 고문을 당하였는지 살과 가죽이 터져 창자가 몸 밖으로 쏟아졌으며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천국으로 개선하는 날 날이 밝아 마당으로 내려갈 때가 되자 그는 기쁨의 표시로 자기와 옥을 지키는 이들에게
작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영광스럽게 최후의 형장으로 끌려나갈 때 그동안 욕설을 퍼부으며 매질하고 형벌하던 포졸들과 백성들도
그를 뒤따라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그와 작별하였습니다.

1839년 9월 6일 목이 잘려 스물 아홉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복녀 최 비르지타

최 비르지타, 그녀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나왔습니다
- 다블뤼 주교님의 비망록, 1859년

최 비르지타는 최해성 요한의 고모로 남편은 유씨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최 요한이 원주 감영에 갇히자 그를 면회하고자 했는데,
천주교인이냐는 물음에 교인임을 밝히고 그녀도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배교하라는 말을 거부하여 극심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관장은 그녀를 감옥에서 굶어죽이라고 명을 내렸다. 굶주림 속에서 무려 4달 동안이나 죽지않고 견디자 관장은 포졸들에게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형리들은 감옥을 찾아가 그녀의 목에 채워진 큰 칼을 조여 교살(絞殺, 목졸라 죽임)하였습니다.
그 때는 1839년 12월 8일, 나이는 57세였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전한 이는 그녀가 교살되었을 때 몸에서 눈부신 빛이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며 분명 그녀가 천국에 갔음이 확실하다고 말했다고 한다.